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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책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한 인간의 사랑

by 현명한도미니카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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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되지 않고 다시 신학교를 간 이태석 신부의 생애에 대한 글이다. 저자 우광호는 머리말에서 하늘에 있을 이 태석 신부에게 편지를 쓴다.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간 당신이 부럽다. 가야 할 길에서 머뭇거리는 내가 부끄럽다.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 줘서 고맙다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우광호 지음-

 

이 태석 신부의 약력

이태석 신부는 1962년 9월 19일 부산 송도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자라서 부산에 있는 경남고등학교와 김해에 있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삯바느질 등 여러 가지 궂은일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10형제 중 아홉 번째였던 이태석은 활달한 성격에 개구쟁이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집 가까이 고아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있어 이태석의 어머니도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이태석은 어렸을 때 꿈이 고아원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근처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전염이 된다. 그는 똑같은 환자가 되어 끝까지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하다 1889년 4월 19일에 숨을 거둔다. 

 

이태석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학원은 다닐 수 없었다. 그는 혼자서 독학으로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등 여러 악기들 연주법을 익혀서 몇 개월 만에 성당에서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중학교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보를 적기 위해 오선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학생이었다.

 

어찌 보면 아프리카 수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사제가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바로 위의 형이 그 길을 가고 있었기에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의대에 재학중일 때는 각종 경연대회를 휩쓸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팔망미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운동도 농구, 탁구, 당구 등 모두 수준급이었고 바둑도 4급이었다 한다.  그러면서도 송도성당 공부방 교사로 봉사도 했다. 1988년  경북 영천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군위관으로 임관을 했다. 군복무를 할 때 실종된 사병을 눈 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찾은 일이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자신의 길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성당에서 출퇴근을 하며 생활을 하다가 문득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였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동안 잊었던 성직자의 길을 가리라 결심한다.

 

제대 후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알아보고는 청소년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살레지오회를 선택한다. 울며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는다. 살레지오회는 돈보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로 순명과 청빈, 정결의 정신으로 산다.

 

수도회에 입회한 이태석은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중 1997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간다. 1999년  로마의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케냐의 나이로비로 답사를 갔다. 아프리카 선교를 꿈꾸던 이태석은 이미 도시화가 되어버린 나이로비는 선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도국적의 제임스 신부의 요청으로 나이로비에서 2,800킬로미터  떨어진 남수단 톤즈를 방문하게 된다. 톤즈와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된 것이다.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1월 아프리카 남부 톤즈로 향했다. 이태석 신부의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된다. 그로부터  9년 후 2010년 1월 14일 새벽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꽃밭인 세상

제임스 신부의 요청으로 톤즈에 도착한 이태석신부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사람들, 전쟁의 폐해로 건물은 부서지고 아이들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고  간단한 치료만 하면 되는 사람들도 매일 죽어나가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을 수 있구나 했다.

 

첫 방문에서 이런 충격뿐 아니라 말라리아를 심해게 앓아서 죽을 뻔했다. 다들 아프리카는 안 간다 하겠구나 생각하는데 이태석 신부는 성령의 부르심에 예 하고 대답했다. 2001년 12월 초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 도착했다. 한국은 초겨울이지만 톤즈는 40~50도를 오르내렸다.

 

수단톤즈에 도착한 첫날, 진료소를 본 이태석 신부는 할 말을 잃었다. 진료소는 흙과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이었고  의료기기는 엉망이었다. 아랍계가 지배하는 북수단과 원주민이 사는 남수단은 1983년부터 전쟁을 했다.

 

이 내전은 남수단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원유가 원인이다. 이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나라가 개입을 했고 정치적, 경제적 이권다툼이 일어났다. 평화가 유지되는가 하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반복했기에 내전기간에 2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남수단 톤즈가 제일 피해를 많이 입었다.

 

처음에 이태석 신부는 문화적 차이와 현지의 열악한 환경으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프리카의 고통은 성숙과 성장을 위한 단련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그런 암담함이었다.

 

선진국의 가난과는 차원이 다른 , 상상조차 하기 힘든 궁핍을 겪고 있는 곳이 톤즈였다. 톤즈는 전기도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그야말로 원시시대 그대로였다. 아니 그때보다 더 궁핍한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한 동이 물을 위해 4~5킬로미터를 걸어야 하고 허허벌판에서 땔감을 구해야 하며 땡볕아래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오랜 전쟁으로  남자들이 없는 집이 더 많았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폐렴과 말라리아, 한센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더러운 물 때문에 콜레라가 번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수단 톤즈의 가까이에는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그리고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그 속에서 사랑과 희망을 발견한다. 이태석 신부는 많은 여려움과 노력 끝에 병원이 조금씩 자리를 잡자 틈틈이 오지마을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그가 마을을 방문하는 날은 마을 주민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톤즈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줄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태석 신부는 가난하면서도 소박한 기쁨을 누리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그들의 삶을 닮아가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전기가 없는 그곳에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장치로 간이성당에 전기를 공급하고 불을 밝혔다. 학교가 없어 하루종일 나무 밑에 앉아 시간만 때우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이태석 신부가 오기 전에 있었던 제임스 신부가 아이들에게 학구열을 심어 놓았기에 불 밝힌 간이성당을 자습실로  내어주자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신부는 한국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톤즈 돈 보스코 초중고등학교를 세운다. 이 학교는 남부 수단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교가 된다. 폭력적이고 충돌적이던 아이들도 교육을 받게 되면 배움을 통해서 서서히 변하게 된다. 또한 이신부는  내전으로 인해 마음속에 깉은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가르치기로 했다.

 

2005년 한국에 휴가를 나왔을 때 색소폰, 클라리넷 등 빈드를 구성할 수 있는 악기 33개를 구했다.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걱정은 말끔히 씻어졌다. 모두 음악에 천재들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자신들이 그렇게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데 놀라워할 정도였다.

 

이태석 신부의 브라스밴드는 실력을 인정받고 유명세를 탔다. 그는 브라스밴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인생은 방적기의 날실, 씨실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음악을 통해 이태석 신부는 톤즈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2008년 10월 이태석 신부는 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한국에 도착한  후 피로에 시달리다  종합검진을 한 결과 대장암말기였다.

 

수단톤즈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이태석 신부는 떠났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브라스 밴드가 후원회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이태석 신부님 묘도 방문하고 열린 음악회에서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도 보았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보다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이 태석 신부의 일생은 불꽃처럼 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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