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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성경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

by 현명한도미니카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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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소근은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신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이 세상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논리를 본다.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이고 약함이고 어리석음이다. 그 논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신앙인들의 삶을 접목시켜 본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그 인생길에 힘이 되기를 바란다.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안소근-

 

성조 이사악은 무엇을 하였나?

신약성경 마태오 복음서의  첫 부분에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성경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성당이나 교회의 문턱에 갔다만 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사악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는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조들 가운데 한 사람이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 보면 이사악은 별로 한 일이 없다.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명령대로 무조건 고향과 친척을 떠난 적도 없고 다른 민족을 살리기 위해 하느님의 공정하심에  맞선 적도 없다.

 

이사악은 주로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든지 아니면 아들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에서 한구석에 끼여 있다. 이사악의 일생은 스스로 무엇을 해 나가기보다 수동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악은 아브라함이 간절히 청해서 얻은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못 믿어 웃었는데도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면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스스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데도 그에게서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모리야산에서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이다. 아사악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고 산으로 간다. 자신이 번제물인 줄은 전혀 모르고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혼인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정해준다. 아들 야곱과 에사우에 관련해서도 이사악은 큰아들 에사우를 축복해 주려고 했지만 야곱과 레베카의 속임수에 넘어가 에사우가 아닌 야곱을 축복해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이사악은 자신의 의지대로 한 일이 별로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슨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대항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사악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후손의 약속은 이사악을 통해 이루어졌다. 맏아들 에사우가 아닌 작은아들 야곱을 선택하신 것도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고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도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하느님은 종종 그런 예외적인 선택을 하신다. 그 선택은 중요하지만 이사악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일의 도구가 되었다.

그가 한 일은 속은 것뿐이었다. 그분이 가만히 묶여 있는 이사악을 통하여 이루신 업적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보다 더 위대하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비하면, 우리가 애써서 한 일은 보잘것이 없을 것이다. 이사악이 나서서 한 일이 없다 해도, 그 안에서 일하신 하느님 때문에 이사악은 이스라엘의 성조가 되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게 내어드린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인간 요셉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천사가 요셉에게 한 말이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이 365번 나온다 한다. 내가 직접 세어 보지는 않았다. 이른바 소명 사화에서 하느님께서 일을 맡길 때 하는 말씀이다. 천사는 왜 요셉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 상황에서 그가 두려워할 일은 없는데 말이다.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하면 깨끗이 끝나는 일이었다. 파혼을 하면 마리아도 죽지 않는다. 요셉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시면서 맡기시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성경에 요셉이 나오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탄생 부분에서 나오고 예수님을 보고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며 의구심을 품고 서로 물을 때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하니 아내로 맞아들이고 이집트로 피신을 가라 하니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나는 놀라운 일을 하고자 하셨다면, 차라리  요셉이 없었어야 그 일이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요셉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더 놀라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요셉이 별로 큰 역할을 한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족보이야기에서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에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쓰여 있다.  아하, 요셉은 다만 마리아를 위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요셉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구실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 여기지 않는 근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으려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요셉이 빠져나갈 구멍이 되는 것이다.

 

요셉의 몫은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몫이다. 오해를 받아도 맞서지 않고 오히려 오해하도록 하고 성모님과 예수님이 살 수 있게 했다. 요새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몫이다. 분명하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으면서 책임만 가득한 몫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기에,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전하지 않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결정의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없을 때도 있다.

 

말을 다 해 버리면 나는 다른 사람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사정을 다 아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가정의 요셉이 그랬듯이, 크든 작든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그럴 때, 때로는 요셉처럼 그저 피해 갈 구멍이 되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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