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나만의 질문을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
모든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다산은 <논어>를 이렇게 다시 썼다.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나를 깨닫는다는 것
언젠가부터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말이 버겁다.
오십이 되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에게 외 살아야 하는지를 묻지 못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단 하나의 질문만 남기고 싶다."
그리고 쉰하나에 이르러
<논어>를 다시 편 다음, 삶과 죽음의 질문들을 정리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질문은 사람이다.
사람을 깨닫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정약용은 인생의 마지막 질문을 찾았다.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다산의 질문
다산이 말한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이요,
또 하나는 이익과 손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긴다.
1.가장 큰 등급 :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 것
2. 두번째 등급 :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
3. 세번째 등급 : 나쁜 것을 좇아서 이익을 얻는 것
4. 네번째 등급 : 나쁜 것을 좇아서 해를 받는 것이다."
기약없는 귀양살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척박한 삶에서 다산은 지쳐갔다.
'세속에 빠져 학문의 길에서 떠났으니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고
담대하게 귀양에 임했지만 세월 앞에서 무너지는 몸과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은 수시로 어디론가 떠나버려 잡념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졌고,
중풍은 점차 심해져 오한과 마비에 시달렸다.
집필에 매진하며 앙다물었던 버릇 때문인지 이도 하나둘 빠져 음식을 먹기도 힘들었다.
다산 자신은 물론 누가 보아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다산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귀양 생활과
척박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과 알 수 없는 미래로 흔들리는 그에게 해답을 준 것이
바로 <논어>의 지혜였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천명임을 알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잠잠히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이겨낼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다산의 <논어>
<논어>는 첫머리를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논어>의 마지막 문장은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논어>는 학문에서 시작해서 천명으로 끝나는 경전이다.
다산은 <논어>를 평생을 두고 공부했고,
샮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다산은 삶은 <논어>의 문장들과 닮았다.
다산은 평생을 두고 공부했고
천명에 순응하는 지혜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할 때도,
집안이 폐족이 되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척박한 귀양지에서도,
다산은 <논어>에 새겨져 있는 문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논어>는 이천오백년 전 춘추시대에 활동했던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모은 책이다.
대화를 통한 공자의 가르침과 간략한 경구로 구성되었지만
공자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책이 이뤄졌기에 그 구성과 체계도 일관적이지 않다.
책의 주제도 철학은 물론 교육과 문화, 정치를 비롯해 일상적인
삶의 도리까지 세상사를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넘 나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곧 난해한 문장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짧은 문장에 담긴 심오한 이치를 이해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어>와 관련해 나온 책은 삼천 종에 달한다고 한다.
동양철학의 핵심이자 학문의 기본으로 인식되었기에
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았다.
<논어>의 반만 읽어도 세상의 이치를 꿰뚫을 수 있다
<논어>에 담겨 있는 가르침은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이다.
공자가 말했지만 그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지 않은 것도 많아
그 해석이 제각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지향이 하나 있다.
바로 다산이 말했듯이 <논어>를 통해 가장 높은 단계의 기준을 얻는 것이다.
'가장 옳으면서 가장 이익이 되는 것'
여기서 '이익'이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과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논어>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람됨의 근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논어>에 담긴 내용을 직설적으로 요약하자면
'옳고 바른 길을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가장 유익하고
충실하게 채울 수 있는 법'이다.
<논어>가 주는 또 한 가지 가르침은 변화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다.
도에 대한 열망을 말하는 것이지만 공부를 통해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함께 말하고 있다.
죽었다 깨어날 정도로 변화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도를 깨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논어>는 다순히 개인의 수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측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반부논어치천하'
논어의 반만 읽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고사가 잘 말해준다.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말고 성장하라
왜 공부하는지를 알기 위해 공부한다.
나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말은 그 사람의 전부가 담긴 그릇이다.
공부란 매일 보던 풍경을 새롭게 닦는 것이다.
어른스러움이란 기꺼이 나이다워지는 것이다.
독서는 만 권을 읽듯이 한 권을 새기듯 읽는 것이다.
지식은 쉬지 않고 나아가니 공부를 멈출 수가 없다.
사람답게 쓰기 위해서는 사람답게 벌어야 한다.
모든 위대한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공부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즐긴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을 걱정하려거든 자신의 부족함부터 돌아보라.
용기란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는 공부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나 자신보다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없다.
매일 내리는 사소한 선택들이 모두 나의 역사가 된다.
배움은 입이 아닌 삶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삶을 살아라.
다산의 마지막 질문
하늘의 명을 안다고 함은 어느 순간 경지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스리고,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당당하기 우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천명이다.
예를 안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나 일상에 충실한 숩관을 일컫는다.
다산이 새벽마다 마당을 쓸며 하루를 시작하고,
복숭아뼈에 세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집필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예의 힘이 있었다.
말을 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그 시작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말과 글이 자신을 말해주고
자신의 삶을 정해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다산은 <논어>의 가르침에 이끌려 '자신의 삶'을 살았다.
다산은 삶을 통찰하는 지혜와 자신을 바로잡는 힘을 얻기 위해
아무리 험한 일 겪어도 이겨내고 소명을 이루기 위해 <논어>에 길을 묻곤 했다.
영화를 누릴 때에도, 고난에 청할 때에도 그리고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논어>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을 가다듬는다면 길을 잃고
헤맬 일은 없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다산은 묻는다.
"삶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지금처럼 살 것인가?"
내가 가끔 보곤하는 유튜브 <아는 변호사> 이지훈 씨는 말한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편(남편)을 선택한 경우라고 했다.
나자신를 모르는 사람은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불행해지니까.
그리고 나자신을 알려면 <논어>를 공부하라고 한다.
<논어>를 공부하면 나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어 사회생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도움정도가 아니라 거의 해결책으로 얘기를 한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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