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출간된 <밤의 눈>은
경남 의령 출신의 조 갑상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그래, 좋지."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다 진짜는 아니지."
"그럼."
"그렇다고 다 거짓말도 아니지."
"그럼."
- 이슬람의 어느 이야기꾼과 청중들의 대화 -
책을 펴면 목차가 나오기 전에 제일 먼저 나오는
인용구다.
<밤의 눈>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진짜는 아니지만
또 다 거짓말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부터
5.16쿠데타의 1960년대,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0년대까지, 격동하는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절의 탓하자니 분노가 가슴을 찢고, 운명이라기에는
너무나 허망했다".
1972년 겨울, 소설의 두 주인공 한용범과 옥구열은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마치고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근10년만에 만나지만 잠깐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는 외엔
드러내놓고 아는 체할 수도, 반가와할 수도 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며 그 여름을 회상하는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한용범은 조부 대에 대진읍에 들어온 지주 가문의 셋째다.
부유하고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온
탓에 대진읍의 터줏대감이자 권력자인 지서주임, 부읍장,
방위대장, 의용경찰대장 등 '사인방'에게은근한 미움을
사왔다.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하고 대진에 해군첩보대가 파견되자
'사인방'을 비롯한 대진의 실력자들은 첩보대 대장 권혁 중사와
함께 한용범을 사상범으로 몰아넣는다.
한용범은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보도연맹 가입자들과
함께 학살장소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남지만 여동생
한시명이 처참하게 대살당한다.
옥구열 역시 대진 사람으로 아버지가 보도연맹 가입원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한 뒤 마산에서 운수업을 하며 살다가
4.19혁명 이후 보도연맹 가입자 행방 공개를 촉구하는 침묵
시위를 보고 유족회를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한용범을 자문으로 초빙하고 자신은 대금유족회 회장이
되어 유족들을 모아 시신을 불굴하고 합동묘를 만드는 등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쓰지만 5.16쿠데타 이후 국가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사망한 좌익분자를 애국자로 가장하고 군경이
인민을 학살한 것처럼 왜곡 선전하여 국민을 오도'했다는
명목으로 한용범 등과 함께 체로되어 고초를 겪는다.
국가 차원에서가 아니라 유족들이 직접 결성한 유족회 역시
쿠데타 이후 합동묘가 파헤쳐지는 등 탄압을 받는다.
"전쟁나고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국가는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분류하여,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어떤 이들은 망각할 것을 요구한다.
적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은 국민의 이야기로 기념되지만
대진에서 죽은 이들은 이러한 국민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로 남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게 타당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는 <밤의 눈>을 통해 전쟁이 전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주둔 초반에는 '사인방'의 말에 비판적이었다가 점차
학살에 무감각해지는 권혁 중사, 남편은 전사하고
시아버지까지 좌익 성향을 띠었다고 잡혀가자 방위대장에게
의존하게 되는 한시명의 친구 양숙희, 아들의 입대를 볼모로
재산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 용주골 이 부자, 학교를
세우고 약자들의 권리를 지키려 애쓰다 대진읍 실력자들의
눈 밖에 나 살해당한 남상택목사 등 한용범과 옥구열을
비롯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제각기 고통과 갈등을 안고 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 밝음이 있을 것이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공포스러운 눈길과 그들을
지켜보는 하늘의 달이 소설 속에서 문득 '밤의 눈'으로
목격될 때, 우리는 목격자이자 증언자가 되어 이웃의
고통에 관한 '밤의 눈'을 떠야하는 위치에 놓인다.
<밤의 눈>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 투쟁이며, 자유의
공간에 부여된 증언의 영역을 서술한다.
또한 국가의 가장자리를 탐문하고 그늘을 드러내며
국민의 공간이 지닌 분열과 양가성을 제시하는 문제적
소설이기도 하다는 서평이 와 닿는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면 그 속에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핑게와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입힌다.
5.18사건이 일어나고 내 주위엔 그 사건과 직접,간접으로
연류된 사람이 없었기에 별로 듣고 싶지않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내 살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성경공부를 하다가 그룹원 중에
형제 중에, 가족 중에 그 일을 직접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것이 현실이었음이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젠 우리나라의 시대상에 대해서 알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다보니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은 일과 상황들이 그 속에 들어간 것 같이
느껴진다.
슬프고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견디어내고 이 정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축복이라고 해야할까?
모든 영화 뒤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희생된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겪은 세대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빨갱이 세상이 될까 걱정되어 잠이 안 온다.
나야 이제 곧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 손주들도
잘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내가 말했다.
"엄마, 기도 열심히 하세요.
기도 열심히 합시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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