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앞두고 한국을 시험했던 미국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 소인수회담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불완전한 확장억제…거래 없었던 한미 정상회담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해줄 답을 가져왔어야 했다. 신냉전 체제에서 대한민국이 어느 진영에 가담할지를 공개적이고 확실하게 천명해야 했으며, 미국의 불공정 경제 정책이 우리 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불완전한 확장억제에 대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명문화했고, 확장억제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조성한 자체 핵무장론에 핵확산금지조약(NPT)·한미원자력협정 준수라는 말로 족쇄를 채워버렸다.
이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억제전략위원회(DSC), 통합국방협의체(KIDD), 한미군사위원회(MC)라는 조직이 있는데 핵협의그룹(NCG)이라는 옥상옥을 만들고는 ‘핵우산’이 ‘핵방패’가 됐다면서 자화자찬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언행일치’의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때 “한미 동맹은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거래 관계가 아니다. 한미 동맹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가치동맹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에 어떠한 ‘선물’도 주지 않았고, 미국 역시 우리에게 그 어떤 답례품도 주지 않았다. 대단히 중요한 거래 이슈들이 산적했던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 어떤 거래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윤 대통령의 말대로 한국이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상시 배치 수준의 탄도미사일원자력잠수함(전략원잠) 전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북핵 억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원잠을 14척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8척을 태평양에 배치하고 있다.
이들 잠수함의 동선은 극비 사항이지만, 잠수함의 모항·조선소·승조원 가족 등을 통해 추적해보면 현재 태평양 지역에서 작전배치 또는 작전배치 가능 상태인 전략원잠은 메인과 켄터키 2척뿐이다. 최근 임무를 마치고 모항에 복귀한 헨리 M 잭슨, 네바다, 앨라배마, 펜실베이니아는 수리 중이거나 수리를 위해 입고된 상태이고, 네브래스카는 핵연료 교체 및 수명연장을 위한 30~40개월 일정의 대규모 공사를 위해 조선소에 들어갔다.
최근 핵연료 교체 작업을 마치고 복귀한 루이지애나는 시험 운항과 부대 재편성, 작전배치를 위한 훈련 일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는 작전 투입이 어렵다.
지난 2월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입항한 미국 핵 추진 공격잠수함 스프링필드(SSN 761·6천t급). 연합뉴스
태평양 작전 가능 미 전략원잠은 고작 2척
현재 태평양에 단 2척이 작전 또는 작전 대기 상태인 미 전략원잠은 앞으로 가용 전력이 점점 더 줄어들 예정이다. 차세대 전략원잠인 컬럼비아급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서 각 잠수함의 노후화가 매우 심해지고 있고, 노후화된 잠수함은 더 잦은 정비 주기와 더 긴 정비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략원잠은 적이 미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했을 때 끝까지 살아남아 보복 타격을 가하는 상호확증파괴(MAD)의 핵심 자산이다.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나라다. 사실 드골의 질문엔 그 어느 나라도 답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미국이 본토에 대한 전략적 억제 구현 임무를 수행하는 최고급 전략자산을 오로지 한국만을 위해 수시로 전개시켜준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몽상가’나 할 일이다.
국제 관계는 철저한 거래 관계다. 주는 것이 없으면 받을 수 있는 것도 없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 전부터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미국 주도의 반중 동맹 참여,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과 공급망 재편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우’자도, 중국의 ‘중’자도 꺼내지 않았다. 신냉전 구도가 또렷해지며 각국이 피아(彼我) 구분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과 대치하고 있는 자유민주주 진영의 편에 서는 것을 회피했다는 이야기다.
4월 평택항에 입항한 미 7함대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존 핀’. 이일우 제공
사실 미국은 정상회담 약 일주일 전인 4월 21일, 한국을 시험대 위에 올렸다. 국방부가 철저히 감췄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4월 마지막 주 한미 양국은 이지스함을 동원한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미 7함대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존 핀’이 평택해군기지에 전개됐고, 존 핀의 전개에 맞춰 우리 해군 제7기동전단의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과 구축함 최영함도 평택기지에 들어왔다.
필자는 정보원을 통해 이들 전투함들이 평택해군기지에 입항하는 상황부터 부두에 계류 중인 사실까지 확인했고, 군 당국이 이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한미 연합함대의 평택기지 전개와 서해상 연합훈련은 일주일 넘게 공개되지 않았다.
존 핀은 4월 16일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출항해 곧바로 서해에 진입했다. 평택해군기지 입항 전까지는 우리 해군 제2함대 초계함이 동행했고, 4월 마지막 주 출항 후에는 우리 해군 제7전단 전투함들과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이 사실상 내해로 인식하고 있는 서해에는 미군 전투함이 전개하는 것이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동향이지만, 중요한 것은 존 핀이라는 이지스함이 다른 7함대 전투함들과는 다른 이지스함이라는 점이다.
2017년 취역해 2020년 첫 작전 배치된 존 핀은 지난 2020년 11월, 태평양에서 SM-3 블록 2A 미사일로 ICBM 표적을 요격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전투함이다. 당시 존 핀은 자체 레이더가 아니라 C2BMC 연동 데이터로 표적 정보를 받아 ICBM을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이번 서해 훈련에서 존 핀은 주한미군 사드와 패트리엇 등 다른 자산들과의 데이터 연동 훈련도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존 핀은 탄도미사일을 보기만 하고 요격할 수는 없는 우리 해군의 ‘깡통 이지스함’과 달리 최신 전투체계인 베이스라인 9.C2와 BMD 5.1 체계를 탑재해 자체 센서는 물론 데이터링크로 획득한 표적 정보를 이용해 원거리에서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고성능 전투함이다.
존 핀이 서해에 배치되면, 중국이 연안에서 한국·일본·미 항모전단을 향해 발사한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상승·중간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다. 서해 중간수역에 배치될 경우, 중국 간쑤성 톈수이(天水) 일대에 배치돼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에 대한 요격도 노려볼 수 있다.
중국 코앞에서 벌인 한미훈련 미공개 이유는?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국 해군의 서해 미사일 방어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함으로써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이며, 반중 동맹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중국에게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 최신 이지스함의 서해 전개와 한미 연합 MD 훈련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마도 한국 정부 내에서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최고위급에 앉아 있을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억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전략적 이익이라는 결과물도 얻지 못했다.
입으로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라고 주장하면서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한국의 박쥐 같은 행보가 계속된다면 한국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들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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