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조용한 중국행’
지난 3월24일 중국 톈진에 있는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회장이 전기차에 사용되는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생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발전포럼 참석 목적
3년 만의 방중 ‘잠행하듯’
미·중 반도체 갈등에 정중동
최태원 SK 회장 27일 출국
중국 새 지도부 면담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참석차 곧 중국을 찾는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는 국내 양대 기업 총수들의 잇단 중국 방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25∼2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리는 ‘2023년 중국발전고위급포럼(중국발전포럼)’ 참석 차 중국을 찾았다. 중국발전포럼은 국무원이 대외 경제교류 등을 위해 2000년부터 개최한 연례행사로, 이 행사에 참석한 국내 대기업 총수는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 회장도 중국발전포럼 참석은 올해가 처음이며, 중국 방문도 2020년 5월 시안 반도체 공장 방문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 회장은 3년 만의 방문임에도 지난 23일 베이징 도착 이후 동선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언론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이 회장은 도착 다음날인 24일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톈진시를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 중 한 명인 천민얼 공산당 시위원회 서기와 면담했지만, 삼성 측은 이 같은 사실도 25일 이 회장의 중국발전포럼 참석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이후에야 공개했다.
이 회장은 중국발전포럼의 모든 행사에 참가 신청을 했지만 전체회의 등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다가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과 다국적 기업의 기회’를 주제로 열린 비공개 라운드테이블 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행사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행사 참석 이유 등을 묻자 “북경(베이징)이 날씨가 너무 좋죠?”라고 말한 뒤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행사 후에도 취재진을 피해 정해진 출입구가 아닌 곳으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 회장이 모처럼의 중국 방문에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는 데는 미·중 사이에 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에서의 행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반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SK그룹 최 회장은 28일부터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참석한다. 최 회장은 SK가 후원하는 보아오포럼에 거의 매년 참석해왔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년 이후 4년 만에 이 행사에 직접 참석하게 된다.
국내 재벌 총수들의 잇단 중국 방문을 중국의 새 내각 구성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이 회장은 27일 중국발전포럼 폐막식을 전후해 리창 신임 국무원 총리가 주재하는 기업인 면담에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도 보아오포럼에서 리창 총리와 대면할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의 이번 방중은 중국 새 지도부에 ‘눈 도장’을 찍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힌편 이 회장은 지난 24일 톈진에 있는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등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현장 근무자들을 격려했다고 26일 삼성이 밝혔다. 톈진 공장은 삼성전기 부산 공장과 함께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MLCC의 글로벌 생산 거점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기 공장 방문에 앞서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소속 톈진 지역 주재원과 법인장들을 만나 근무 애로 사항을 듣고 격려했다.
탈중국 외쳤지만…글로벌 CEO 100인 베이징에 ‘그래도 중국’[중국은 지금]
3월25~27일 中포럼에 글로벌 기업인 대거 몰려
성장 급한 中 "5% 성장 목표 달성 자신있어"[베이징=이데일리 김윤지 특파원]
삼성전자부터 애플, 아람코, 퀄컴, 쉘, 화이자, 알리안츠, 메르세데스-벤츠, BMW, 네슬레, 지멘스, 리오틴토까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100여명이 중국에 모였다. ‘경제 회복: 기회와 협력’이란 주제로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베이징에서 이어지는 중국발전고위급포럼(이하 포럼) 참석을 위해서다. 포럼은 ‘위드 코로나’로 중국이 기조를 전환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국제행사다.
팀쿡, 中 칭찬에 매장 깜짝 등장 이벤트도
이처럼 글로벌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포럼 참여는 경영 활동에 있어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전방위게 걸쳐 날로 강화되고 있으나, 아직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 혹은 공급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팀 쿡 애플 CEO다. 쿡 CEO는 지난 25일 포럼의 한 특별 세션에서 “애플과 중국은 같이 성장했다“면서 “중국의 혁신은 빠르게 이루어져 왔고 향후 더 빨라질 것으로 믿는다”고 중국을 칭찬하는가 하면, 중국의 농촌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1억위안(약 189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일 쿡 CEO는 베이징 싼리툰에 위치한 애플 매장을 직접 찾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미국에선 중국의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중국명 더우인)을 ‘마녀사냥’하고 있지만, 중국에선 쿡 CEO를 환영하고 있다”면서 쿡 CEO의 행보를 반겼다.
중국이 아닌 인도, 베트남 등으로 생산 시설 이전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진 애플이나 쿡 CEO가 방중 기간 애플의 ‘친중국’을 거듭 강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애플 매출의 20%가 중국, 홍콩 등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애플은 매년 중국에서 400억달러(약 5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 회계연도에는 중국 매출이 거의 750억달러(약 97조5000억원)에 달했다.
美견제에 성장 급한 中 “대외 개방 지속” 약속
중국도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해 엄격한 방역 정책 탓에 경제 성장이 3%에 그친 중국은 올해 목표 성장률을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역대 가장 보수적인 성장 목표이나, 글로벌 경제 둔화에 따른 수요 위축, 강한 반등을 보여주지 않는 부동산 시장 등이 아직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날로 높여가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도 포럼에 모인 글로벌 CEO들에게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신감을 피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이자 중국 내 서열 6위인 딩쉐샹 국무원 상무(수석) 부총리는 26일 기조연설에서 “대외 개방은 중국의 국가 정책이자 현대 중국의 상징으로, 중국 정부는 상호 이익이 되는 대외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겠다”면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후 경제 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 운영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으나 중국의 경제 회복력과 잠재력은 변함없다”(류쿤 재정부장), “중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회복을 보여주면서 세계 경제 성장을 위한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한원슈 중국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등의 발언도 이어졌다.
연일 미국에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하는 중국 정부도 미국 재계엔 온건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상징인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25일 중국을 방문한 미국 재계 인사과 회동하며 “중국은 미국 기업을 포함한 각국 기업을 위해 더 나은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내 한 소식통은 이번 포럼에 대해 “정치·경제·안보 등에서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현재로선 중국 시장 없이 경영 활동이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윤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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