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감청 의혹까지...국민의힘, '산 넘어 산'
지지율 수렁에 빠진 국민의힘이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이라는 대형 악재를 맞이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을 적극 엄호하고 있지만 근거 없는 해명이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정부 도·감청 의혹에 11일 여당은 대통령실의 해명을 들어 적극 엄호했다. 야당은 도·감청의 원인을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규정하며 거세게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용산 대통령실은 과거 청와대보다 강화된 도· 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운용 중이다"면서 야당의 공세에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대통령실의 이전에 도·감청 위험이 꾸준히 제기됐던 터라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수렁에 빠진 여당으로서 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식입장문을 통해 "한미 양국 국방부 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면서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며 의혹을 축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굳건한 한미 정보 동맹을 통해 양국의 신뢰와 협력체계를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미국의 도·감청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건이 위조됐다'는 해명에도 구체적인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여당은 우선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보고서 유출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면서도 도·감청 사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여당은 대통령실의 반박을 지원사격하는 한편 야당의 공세를 "반미 선동"으로 규정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 관련 문건과 관련된 프랑스, 이스라엘 정부 등의 반응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거짓말이라거나 내용이 거짓이라는 반응"이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미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의 진위에 대한 '팩트'가 확인되기도 전에, 친러 성향의 온라인 채널에서 주로 유통된 허위 정보를 맹신하며 '반미 선동'에 혈안"이라고 맞받았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어제 확인되지 않은 언론의 보도만으로 '동맹국의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한미 동맹의 균열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소속 국방위·정보위·외통위 위원들은 도·감청 원인을 '대통령실 용산 이전' 때문이라는 황당한 기자회견까지 했다"며 "그렇다면 정보기관의 이전이 없었던 이스라엘, 프랑스 등도 이번에 우리와 같은 감청 의혹이 있는데, 민주당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당은 겉으로는 우리나라의 외교·안보를 걱정한다지만, 속으로는 어떻게든 윤석열 정부를 흔들려는 목적이 틀림없다"며 "70년 동안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이 이번 의혹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당이 한미동맹 약화만을 기다리는 북한과 뜻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외교·안보에서만큼은 '당리당략'을 멈추길 바란다"고 했다.
유상범 대변인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통령실이 이전한 곳은 국방부와 합참이 있던 건물"이라면서 "그 시설에 들어갔는데, 만일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해 도·감청됐다면 지난 그 건물에 있는 내내 도·감청을 당했다는 얘긴가"라고 되물었다.
유 대변인은 "지금 소위 말해서 미국 CIA를 비롯한 정보 당국에서 감청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이라며 "이걸 가지고 지금 갑자기 비난하다가 갑자기 '용산 이전'으로 오니 뜬금없지 않나"라고 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도 "이 보도를 했던 뉴욕타임스에도 상당 부분 내용이 러시아에 의해서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를 했다"며 "일단은 사실관계의 확인을 미 정부가 하겠다고 그랬고 우리 정부도 협의했다고 하므로 일단 이 답은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가는 지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도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서 우방국이 미국이든 동맹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든 NATO 등 우군에 대한 정보 수집은 일단 기본이다. 그런데 그 정보 수집이 도·감청이라고 하는 불법성에 가까운 그 행위 때문에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거 아닌가"라며 "그 문제가 나왔을 때 독일처럼 스노든 사건 때 공개적으로 국민들이 다 알게 뭐 선언을 할 것인지 아니면 비공개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신 의원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때문'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수십 년 동안 계속 조금씩 보완했다. 그런데 이번에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한꺼번에 보완해서 공사를 했다"며 "또 NSC 등 위기관리실도 과거에는 반지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지하 깊숙하게 있기 때문에 전자기파, EMP뿐만 아니라 도·감청은 아예 안 되고요. 그래서 시설 보안 측면이 잘돼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반박에도 대통령실 졸속 이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신 의원의 해명에 대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상 출입구가 위쪽으로 다소 나와 있는 모습이다. 또 용산의 대통령실은 한 건물에 지하 3층에 벙커가 위치해있다 보니까 아마 그런 언급을 한 것 같다"면서 "그걸로 어느 쪽이 더 보안이 튼튼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조금 논리를 비약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전 사령관은 "청와대 용산 이전이라는 것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 10여 일 만에 결정이 됐다. 그리고 취임하는 5월 10일, 한 50여 일 만에 이전을 완료하는 속도전으로 수행이 된 것"이라면서 "이런 과정은 기존의 국방부 합참본부, 그리고 예하 소속 기관들의 시설 재배치에 따른 이사 문제와 옮겨오는 대통령실과 경호부대들의 개편 문제까지 포함한 하드웨어적 요소들을 고려하는데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아주 부담스러운 그런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 너무 단기간 내에 졸속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허점 중에 하나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단기간에 이렇게 이루어지는 과정을 고려해 볼 때 보안 문제에 대한 책임 기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모두 인식했다. 지난 1년간의 보안 조치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야당은 "도청당한 것보다 대통령실의 태도가 더 문제"라고 꼬집으며 '대통령실 졸속 이전' 논란을 재차 꺼내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외통위·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국의 대통령실 도·감청 관련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야당은 "도청당한 것보다 이에 대처하는 용산 대통령실의 태도가 더 문제"라고 꼬집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의 해명을 두고 "양국 국방부 장관의 견해가 일치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위조됐다는 문서를 직접 원본 문서와 대조해서 확인했나? 미 정보기관의 도청이 없었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했나?"라며 "이런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 해명이고 '날리면 시즌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더욱이 대통령실이 '대통령실 이전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식의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며 야당을 맹비난한 것은 도저히 묵과하기 힘들다"며 "무슨 일만 터지면 사실을 부인하고 남 탓하며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는 윤석열 정부의 뻔뻔한 태도에 할 말을 잃는다"고 비판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여러 가지 설들이 나오고 있기는 합하지만 이게 휴대폰이 도청이 된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공간에서의 대화가 도청이 된 것인지, 혹은 그 공간도 어느 공간인지에 대해서 대통령실에서는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면서 "단순하게 '우리는 도청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철두철미하게 보완이 되어 있다'라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금 이게 우리나라 국내 정치인들을 향해서 이거는 우리가 도청이 된 게 아니고 얘기하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어쨌든 도청이 됐는데"라며 "그러면 미국을 향해서 해명을 요구하고 항의하고 입장을 받아내는 게 첫 번째 아니겠나"라고 했다.
조성은기자
'미 도청' 의혹...40여년간 120개국 엿들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들을 도청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트위터 등 SNS에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와 정보당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주로 담겼는데, 특히 여기엔 대한민국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인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도 그대로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를 놓고 고심한 대목이 고스란히 담긴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달 하순 미국 방문을 앞두고 파문이 확산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과거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 사례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스노든 "수백만 명 개인정보 수집…우방국 정상도 감시"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 CIA 전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무차별적 정보 수집을 폭로해 전 세계적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국가안보국(NSA)가 '프리즘(PRISM)'이라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명의 민간인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프랑스와 독일 등 우방국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한 겁니다. 특히 독일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 오바마 美 대통령 "도청 중단"…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스노든 폭로 이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을 상대로 한 도청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1년 5월, 덴마크 공영방송(DR)은 미 NSA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덴마크 해저 통신 케이블을 통해
메르켈 총리 등 유럽 고위 정ㆍ관계 인사들을 도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화상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동맹국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피해 당사자 격인 메르켈 총리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 최근에만 도청?... WP "미 CIA, 40년간 120개국 기밀 엿들었다"
2020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CIA가 1970년부터 2018년까지 40여 년 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20여 개국을 상대로 첩보 작전을 펼쳐왔다고 폭로했습니다.
WP 보도에 따르면, CIA는 독일 연방정보부(BND)와 공조해 암호장비업체 '크립토 AG'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는데, 크립토 AG가 '전 세계 정부들에 판매한 암호 장비를 통해' 각국에서 오가는 기밀정보를 해제하고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크립토 AG의 고객 국가 중엔 이란과 라틴 아메리카군부 정권,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심지어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까지 포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회사를 통한 기밀 확보 작전은 '루비콘'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미 국가안보국(NSA)도 첩보 활동에 가담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WP는 첩보작전이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았다며 미국은 "동맹이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장비를 사게 해야 한다", "첩보의 세계에 친구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1976년 '코리아게이트'로 불거진 청와대 도청 의혹
워싱턴포스트(WP)의 '도청' 보도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6년 10월 24일, 무려 10면에 걸쳐 일명 '코리아게이트'를 보도한 겁니다. 주한미군철수 움직임 속에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이 미국 상·하원의원 및 공직자 20여 명에게 매년 50만~100만 달러에 이르는 불법 로비 자금을 줬고, 미 사법당국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거였습니다.
특히 WP는 '극도로 민감한 정보장치'를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과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해 이같은 '매수'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있던 청와대를 의미했고, 따라서 미 당국이 청와대를 도청해 불법 로비 혐의를 포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1977년 6월 뉴욕타임스는 CIA가 도청을 통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관여 정황을 포착했다는 보도까지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리아게이트'는 1978년, 돈을 받은 현직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혈맹인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한미 관계가 크게 악화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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