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 성월
교회는 해마다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낸다.
성 요셉 성월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른 아버지인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의 삶을 묵상하는 달이다.
요셉 성인은 셩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약혼자 마리아를 주님 천사의 명령에 따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하느님 구원 사업의
조력자로 등장한다(마태 1.18-24참조)
그렇지만 구세사에서 요셉 성인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성경에도 의로운 사람으로서
직업이 목수였던(마태13.55) 요셉 성인이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고 (루카2.1-7)
헤로데 임금의 폭정을 피하여 이집트로 피난
하였다는(마태2.13-15)기록 정도가 전하여진다.
그럼에도 초대 교회 때부터 매우 깊었던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3월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에게서
탈환하려는 십자군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자
나자렛에 교회를 세웠다. 그 뒤로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주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전파되었다.
1479년에는 식스토4세 교황이 요셉 성인의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다. 1870년에는 비오9세 교황이
요셉 성인을 '거룩한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하였다.
한편 1955년 비오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한국 교회의 수호 성인
우리나라는 교회 설정 초기 조선대목구가 속한
북경 교구의 수호성인인 성 요셉을 조선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오다가, 1838년 앵베르 주교의
요청으로 요셉 성인과 함께 원죄없이 인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모셔왔다.
그 뒤 주교회의 2015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오직
한 수호자만 모셔야 한다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의견에 따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만을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정하였다.
포도밭 주인과 소작인에 대한 묵상글(2024.3.1)
"어떤 반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주인의 행동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공들여 포도밭을 일구었는지
잘 드러내 주는 표현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묘사가
확인하여 주는 것은 이 밭의 소유자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주인'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소작인에게는 저항과 반역의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주인이 자기 몫의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을 죽여 버립니다.
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종들을 보내지만,
같은 소행이 되풀이됩니다.
주인은 끝까지 사랑과 신뢰로 자기 아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아들이야말로 소유권자이기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며 죽여 버립니다.
오늘 1독서에서도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죽이러
하는데 그가 자신들을 제치고 아버지의 상속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받는 사람이
학대받거나 조롱당하는 일이 일어나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만드셨고
살기 좋은 곳, 포도 열매가 잘 맺히는 곳으로 일구시어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진심을
조롱하고 그분의 사랑을 회피하여 온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이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러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 포도밭의 주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반역과 저항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되찾는 것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삶의 질서입니다.
(매일미사 묵상글)
<우리는 잠시 하느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입니다!>
소작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지주로부터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수확의
일정량을 바치며 생계를 이어가는 형태의
농사입니다.
일년내내 죽을 고생만 하고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만큼인 소작농들의 애환은 오랜 역사
소설의 주된 테마였습니다.
돈보스코를 연구하다보니 그분의 부모님
역시 소작농이었습니다.
구호대상인 극빈자 계급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프란치스코 보스코와 맘마 마르가리타는
남의 땅을 빌려 하루 온종일 뙤약볕에서
죽기살기로 일만 하던 소작농이었습니다.
부양해야 할 식구는 많은데 ,농업이 기계화가
되기 훨씬 전이었기에, 돈보스코의 부모님들은
그야말로 하루 온종일 뼈빠지게 일만 하셨습니다.
돈보스코께서 유명인사가 된 이후, 알베르 뒤
보이라는 전기 작가가 근사하게 돈보스코 전기를
집필했는데, 최종적으로 돈보코에게 검열을
부탁하였습니다.
돈보스코가 제일 먼저 수정한 대목이 있습니다.
"돈보스코의 가족은 꽤 넉넉한 농부였다." 라는
구절을 확인한 돈보스코는 빨간 펜으로 찍찍
긋고 이렇게 고쳤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농부였다."
그만큼 소작농들의 삶은 고달팠고 힘겨웠습니다.
사실 소작인들 입장에서 지주들이 땅을 빌려준 것,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 가운데서 악한 소작인들이 있습니다.
대풍년, 다시 말해서 엄청난 소출을 거두었으면서도,
주인에게는 올해 농사가 흉년이라며 쥐꼬리만큼의
소출만을 보내는 악덕 소작인도 있습니다.
빨리 소출을 보내주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알았다해놓고는 죽어도 안 보내는 진상 소작인도
있습니다.
더 지독한 소작인이 있습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지주는 자신의 종을
보내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들까지 소출을
받아오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악한 소작인들은 그 아들마저 매질하고
죽인 후 포도밭 밖으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 악한 소작인들은 바로 유다인들이요, 동시에
우리들이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소작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단 한번뿐인 인생을 잘 좀 가꾸어보라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어 보라고 임대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임대 기간이 결코 영속적이지 않고,
길어야 90년,100년입니다.
악한 소작인들처럼 분수 넘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인 행세를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나는 잠시 하느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종이면서 주인인 양 큰 소리 뻥뻥치고 행세하다가
큰코 다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한 소작농처럼 처신하다가는 하느님의 강력한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늘 겸손하게, 늘 신중하게, 늘 종이나 소작농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갈 일입니다.
나를 내 삶의 주인이요 주인공으로 여기고
가슴을 딱 펴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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