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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필사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0장~11장)

by 현명한도미니카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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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형제 여러분, 내 마음의 소원,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의 입과 너의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읶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11    그래서 나는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벤야민 지파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엘리야가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걸어서 어떻게 호소하였는지 모릅니까?  "주님, 저들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대답은 어떠하였습니까?  "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 칠천 명을 나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이와 같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은총으로 선택된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은총으로 되는 것이라면 더 이상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총이 더 이상 은총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찾던 것을 얻지 못하고, 선택된 이들만 그것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졌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마비시키는 영을,

       보지 못하는 눈을,

       듣지 못한는 귀를 주시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하셨다."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식탁이 그들에게 올가미와 덫이 되고

       걸림돌과 응보가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늘 굽어 있게 하소서."

 

다른 밑족들의 구원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의 실패로 다른 민족들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이 모두 믿게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풍요롭겠습니까?

     이제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의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맏물로 바치는 빵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나머지 반죽도 거룩합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거룩합니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해서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아서 잘려 나가고 그대는 믿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함께 준엄하심도 생각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떨어져 나간 자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그대에게는 인자하십니다. 오직 그분의 인자하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잘릴 것입니다.  그들도 불신을 고집하지 않으면 다시 접붙여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대가 본래의 야생 올리브 나무에서 잘려 나와, 본래와 달리 참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졌다면, 본래의 그 가지들이 제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이야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습니까?

 

온 이스라엘의 구원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오시어

       야곱에게서 불경함을 치우시리라.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어 줄 나의 계약이다."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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