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진 날이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다. 나가사키 의과대학 방사선학과에서 연구하던 이 책의 주인공 나가이 다카시 박사도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연구실적 등도 모두 재로 변했다. 저자 폴 그린은 전쟁 중의 일본에서의 나가이 박사의 생애를 자세히 쓰고 있다. 그 당시의 일본의 상황과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보는 원자폭탄이 목표지점과 다른 곳에 투하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가이 다카시의 생애
1930년대 나가이는 군의관으로 징집되었다. 중국 전선에서 4년 반이라는 세월을 보낸 후 귀국하여 그의 용감한 행적을 기리는 훈장을 받는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는 부상당한 군인이건 일본 사람이건 중국 사람이건 또 다른 나라 사람이건 흘리는 피는 똑같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군복무를 마친 나가이는 대학으로 돌아가 강의와 연구를 계속했으며 마침내 나가사키 외과대학 방사선과 주임교수가 된다. 나가이는 과학의 힘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신론자였으나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신의 존재와 영적세계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다. 어려서부터 일본식 종교교육을 엄격히 받은 나가이는 자신의 영적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모리야마 신부를 찾아간다. 그 신부는 자신이 신부가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일본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당시 희생당한 순교자의 조카였다. 서로에게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된다. 그리고 숨은 그리스도인 가문의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7만 2천 명의 처참한 죽음, 아름다운 도시 나가사키는 폐허가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자신도 너무 많은 방사선은 쏘여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도 핵벌판의 잿더미에 오두막을 짓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오두막의 이름은 여기당이라 지었다. 성경에 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뜻이 담겨 있다. 그의 저서는 전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천황은 물론 거리의 부랑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거룩한 그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의 마지막 걸음은 강력하고도 흡인력 있는 것이었다.
일본의 생각
1930년대 중반 도쿄에는 권력 기반이 셋이 있었다. 첫 번째는 히로히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유명무실한 권력, 두 번 째는 정치가, 재계인사, 기업가로 구성, 셋째는 군국주의로 가장 강력한 권력 기반이었다. 군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조국을 군사와 경제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성한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군국주의자들은 만주 합병과 거기에 들어가야 하는 막대한 군사비용에 반대하는 정치가와 사업가들을 살해했다. 히로히토 천황이 이 유혈참사를 강도 높게 항변했지만 신랄한 비난만 돌아왔다. 군국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었고 일본은 군부독재시대로 접어들었다. 1937년 7월 북경에서 가까운 마르코 폴로 다리 근처에서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났다. 나가이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제5사단 위생대 의무장으로 중국행 배를 탔다. 30개월 동안 중국 전선에서 지내면서 군국주의자들의 야만성을 목격하는 동시에 그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적군의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고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이 전쟁이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 그들의 장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민족적 이기주의, 장군과 정치가들의 논리에 대해 깊이 회의를 한다, 일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도 배급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다. 식품, 연료, 의약품, 심지어 의사들이 부족해 많은 어린아이들이 죽었다. 나가이가 중국에서 죽어가는 병사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어린 딸 이쿠코도 이 때문에 죽었다. 일본은 이곳저곳에서 패배하고 전선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언론 봉쇄로 패배한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다. 1944년 7월에 사이판이 함락되었는데 그때 3만 명의 일본군과 2만 2천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1945년 8월 9일 아침, 도쿄의 대본영에서는 전시 최고회의가 열려 일본이 항복할 것인지 항전할 것인지 의논했다. 오전 11시 2분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일본은 정쟁을 끝내기로 결정을 했다. 8월 15일 전쟁을 끝내는 천황의 칙서가 발표되었다.
희생양
그가 장모와 아이들이 있는 고바를 향해 출발했을 때는 평온한 아침 햇살이 우라카미 골짜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파괴된 도시를 뒤로 하고 거울같이 맑은 시냇물을 따라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먼저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로 얼굴과 손을 씻고 목을 축인 다음 아이들과 장모에게 이 비보를 어떻게 전할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산이 이토록 아름답고 믿음직스러웠던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몸소 고통을 겪고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연민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다. 울어보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는 방황하는 사람이 길을 찾는 데 도와줄 수 없다.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죽음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그 뜨거운 입김을 느껴보지 않고는 다른 사람이 죽음을 극복하고 살아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도록 도와줄 수 없다.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걸어가는 동안 중국에서 힘든 행군 중에 성구로 기도하며 이겨낸 것과 같이 성서말씀이 떠오르자 새로운 기운이 넘쳤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과 영혼에 기운이 넘쳐났다.
나가사키 우라카미, 독실한 신자들의 마을,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계획에도 없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1945년 11월 23일, 합동위령미사에서 나가이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가 선택된 것은 미군 조종사가 이 지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의 섭리라고 한다. 나가사키는 2차 세계대전과 연루된 모든 민족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희생제단에 바쳐진 하느님의 희생제물, 흠 없는 어린양 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일 잊고 사랑을 잊었다.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죽이면서, 우상을 숭배했는데 이제는 전쟁이 끝났다.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었기에 거룩한 나가사키의 번제물만이 충분한 희생제물이 되었다. 그때서야 하느님께서는 천황을 움직여 전쟁을 종식시킬 거룩한 선포를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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